(1월25일 수요일 결방 2월1일 방송예정)
세계다크투어 32화에서는 2008년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일어난 파키스탄 이슬람 테러집단 '라쉬카르에 바이바'의 테러리스트 10명이
무차별 살상을 벌이며 뭄바이 전역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인도 뭄바이에서 발생했던
최악의 연쇄 대테러를 다룹니다.
<목차>
1. 테러과정 타임라인
2. 테러원인과 그 이후
1. 테러과정 타임라인
2008년 11월 26일 밤 9시 20분
인도 뭄바이 트라이던트 오베로이 호텔의 더 빈레스토랑에서 한 투숙객이 총성을 듣고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밖으로 나가보지만 직원들은
그저 동네 불량배들이 한 짓이라며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테러범들이 호텔 안으로 들이닥치며 투숙객과 직원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하기 시작합니다.
공포에 질린 투숙객들이 놀라 탁자 밑으로 대피해 보지만 테러범들의 총구가 탁자 밑을 향하더니 이내 숨어있던 이들을 찾아내 또 한 번 쏘기 시작해
피해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총기난사가 잠잠해진 틈을타 레스토랑 요리사들이 부상자들을 주방 안으로 옮겼는데 이내 테러범들이 출입문에서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고 주방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지만 다행히 불발탄이어서 수류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2008년 11월 26일 밤 9시 30분
두 남자가 택시 안에 몰래 폭탄을 설치 한 뒤 하차했고, 이내 서양 관광객들의 단골명소로 유명했던 레오폴드 카페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폭발음이
카페 내에서 울려 퍼졌고,
이후 테러범들은 카페 안에 있던 관광객과 점원들을 향해 총을 난사해, 15명의 사망자와 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테러범들은 총을 쏜 뒤 타지마할 호텔로 향합니다.
같은 시간 3km 떨어진 곳에서도 두 남자가 차트라파티 시바지 역으로 들어섭니다.
두 남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뒤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 수류탄을 던졌는데 수류탄은 폭발하고
사람들은 놀라 대피하자 도망가는 사람을 향해 서로 등을 맞대고 빙글빙글 돌아가며 총을 쏘기 시작합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경찰관이 역을 포위했으나 무기는 리볼버 총 한 자루와 대나무 몽둥이가 전부였고, 역에 있던 무장 경비원이 소총으로 도왔으나
테러범이 가지고 있던 기관총에 대적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경찰관들은 총격전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하고, 무장경비원 역시 가슴에 총을 맞고 의식을 잃게 됩니다.
대합실 테러를 일으킨 2인조 테러범들은 처참한 현장을 떠나 카마 앤드 알블리스 병원으로 향합니다.
11월 27일 새벽 1시 26분
인도 정부 요원들은 휴대폰 심카드를 이용해 뭄바이서 활동 중인 테러범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도청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인도 군대에 이를 알리며 협조를 요청했고 특수부대가 포함된 병력을 파견시킵니다.
새벽 1시 30분 알블리스 병원에서 군경 합동부대와 조우한 대합실 테러범 2인조가 총격적은 일으키다 도로 차단물 앞에서 2명 모두 총에 맞아 1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21세 청년 카삽(왼쪽 사진)은 경찰 1명을 살해하며 저항하다 그 자리에서 생포되었습니다.
이후 카삽이 경찰조사에서 자신들은 카피스타의 이슬람 테러조직 라쉬카르에 타이바에서 왔다고 진술하며 테러경위와 작전들을 자백하고
2012년 테러를 일으킨 주동자로 사형판결을 받고 교수형이 집행됩니다.
11월 27일 오전 9시 43분
타지마할 호텔에 두 남자가 가방을 메고 로비로 들어서고 호텔 안을 돌아다니며 내부 구조를 살피더니 이내 두 남자는 총을 꺼내 호텔 안으로 총을 쏘아대기 시작합니다.
당시 투숙객들은 근처 결혼식장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테러범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자 놀란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을 쳤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피를 흘리며 사색이 된 사람들이 달려오자 의아해하다가 쫓아오는 테러범들을 보고 모두 주방으로 대피했습니다.
투숙객들은 객실문을 의자로 막으며 저항했고, 일부 투숙객들은 살아남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종이에 유서를 남기거나 기도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테러범은 호텔에 불을 질렀고 이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습니다.
2008년 11월 28일 오전 11시
오베로이 트라이던트, 나리만 하우스 이 두 곳에서 27일 오전부터 적극적인 테러범 소탕작전이 시작됐고,
총격전과 인질 구출 작전을 병해해 28일 오후가 되어서야 테러범들을 모두 사살하고 끔찍한 테러는 끝이 나고야 맙니다.
나리만 하우스는 그리 큰 건물은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인을 위한 커뮤니티와 호스텔 등으로 사용되는 건물로, 여기서 테러범들은 인질을 잡고 경찰 및 군인들과 대치했는데
28일 오후 8시 30분 두 명의 테러범을 사살했고 오베로이에서는 오후 3시경 테러리스트들 모두
소탕하였습니다.
테러 원인과 그 이후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이슬람교 중심의 파키스탄과 힌두교 중심의 인도로 분리 독립 됩니다.
두 나라 사이에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을
둘러싸고 인도 VS 파키스탄의 갈등이 발발하고 1949년 UN의 중 재하에 휴전 협상을 거쳐
카슈미르가 양쪽으로 분할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카슈미르를 둘러싼 끊이지 않는
갈등이 계속되는데,
이 끔찍한 연쇄테러를 일으킨 10명의 테러리스트는 라쉬카르 에 타이바(Let)라는
파키스탄 테러조직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조직은 파키스탄 정보국 ISI 가 설립하고 지원했는데, 주목적은 인도와 영유권 분쟁이 있는 카슈미르 지역에 저항 세력을 키우는 것으로
미국과 인도는 이 테러에 파키스탄 정부나 정보국의 지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하지만 파키스탄 정부 측은 그 계획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지원도 끊었는데 이후 이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여 테러를 벌인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 뒤 파키스탄 정부는 LeT 조직 관련자들을 체포하며 자국 내부에서도 사건 주동자들을 처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인도 정부 측은, 테러범들이 상당히 훈련을 받은 모습으로 파키스탄 일부 기관의 지원이라도 받았을 거라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고 뭄바이 현지에서 도움을 준 동조자들이 있었을 거라는 등 여러 가지 의혹들이 나왔지만
결정적 증거를 차지 못해 테러집단의 범죄 정도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 유엔 등 국제사회의 평화 촉구 압박이 이어졌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평화 회담을 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고 이후에도 카뮤미르 지역에서는 가끔씩 소규모 교전이 일어나거나 폭동을 일으키며 사건은 끊임없이 벌어지더니
2011년 7월 13일 뭄바이에서 세 차례 폭탄테러가 더 발생해 26명이 숨지고, 130명이 중상을 입은 피해가
발생해 양국 간 대립은 좁혀지지 않아, 현재까지도 두 나라 사이는 좋지 않은 관계입니다.
이후, 뭄바이 연쇄 테러는 영화 '호텔 타지마할' '호텔 뭄바이'를 통해 재연되어 당시 끔찍하고 처참했던 상황들에 대해 조금이나 생각할 수 있도록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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