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영 대장 일대기
- 고미영 대장 사고경위와 매니저 김
꼬꼬무 67회 방송은 여성산악인으로 현재까지
후배 산악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의지의 표상인 故고미영 대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왜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고 부르는지,목숨을 건 약속은 무엇인지 그리고 매니저 김은 누구인지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미영 대장 일대기
1967년 7월 전북 부안에서 2남 4녀중 막내로 태어난
고미영님은 농수산부에 재직중이던 1989년 북한산
산행에 나섰다 우연히 들어섰던 만경대 위에서 느낀
등산의 짜릿한 맛에 매료돼 등반에 입문하게되고
직장인임과 동시에 등산인으로 활동하게되었습니다.
'적당히'라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등반을 제대로 하기위해 1991년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과 암벽반을 다니게 되고 그것으로도 부족함을 느껴 실내 인공암벽을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서 1년사이 68kg이였던 몸무게가 48kg으로 줄어들만큼 맹훈련을 거듭해 1994년부터 9년 간 국내 여성 스포츠클라이밍계의 1인자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그녀는 엄청난 훈련광으로 알려졌는데
휴일에 자연암벽에서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평일 오전에는 조깅,수영,헬스로 기초체력을 단련하고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는 인공벽에 매달려 훈련을
계속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1997년 10월 11년동안 근무하던
농수산부 교육원일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등반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등반에 올인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하였기에 유럽에 계속 머물지 못하고 3년간 1년에 한달~석달 정도만 등반투어를 다니며
당시 세계적인 클라이머들과 함께 세계적인 암벽과 실내 암벽에서 훈련하면서 국내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도 많이 배우고 자신감도 키웠다고 합니다.
완등할때마다 환한 미소와 함께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외국 클라이머들은 그녀에게 멘털스트롱( Mental Strong)이라는 닉네임도 붙여주었다고 하네요
그녀는 스포츠클라이밍에 안주하지 않고 빙벽 등반도 시작했는데 스포츠클라이밍에서도 그랬듯이 빙벽 등반에서도 시작과 함께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1998년 8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생각되면 거벽 등반에 이어 고산 등반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빙벽 등반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그 계획대로 움직였습니다.
2002년 봄, 고미영님은 세계적인 등반가 마우로 부부 볼레와 짝을 이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서
등반길이 400m, 11피치 최고난이도 5.13d급에 달하는 호텔 수프라몬테를 10시간 만에 자유등반하는것에 성공하는데,
당시 이 루트의 전 피치를 자유등반한 사람은 모두 4명 그것도 다 남자였고, 여자로서는 고미영님이 최초 였습니다.
이후 2004년도 코오롱 스포츠와 전속계약을 하게되면서 꿈에 더욱 한발짜국 가까워지게 되는데요
첫번째 대상은 파키스타의 드리피카(6,447m)등정
그녀는 이 등정길에서 60m를 추락하며 위기를 맞았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고 김형주씨(2009년 1월 31일 설악산 염주골에서 눈사태로 사망) 와 함께
첫 고산 등정의 기뿜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당시 원정기를 통해 '화살촉처럼 뾰족한 정상이 멋져 택한 드리피카는 참 멀고도 험했지만 나에게 많은 생각과 앞으로의 등반 방향을 제시해준 최초의 높은 산'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등반인생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는데요
이듬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지만
발가락 동상으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고
결국 첫 에베레스트 등반 실패를 맛보게 되고
이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청계산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뛰어 오르며 몸에 지방을 쌓기 위해 살까지 찌웠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선게 2006년 가을 초오유(8,201m 세계6위 봉) 원정 셰르파와 둘이 오른 이 산은 에베레스트 원정때 처럼 무너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셰르파가 놀랄정도로 적응을 하며 결국 등정에 성공
이때 고미영님은 14개 거봉 완등을 계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07년 실패했던 에베레스트 재도전 계획을 세운
그녀는 당시는 고산등반가들과 교류가 거의 없었을 때라 함께할 원정대가 없었는데요
그때 함께 가게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바로
매니저김인 김재수 대장이였습니다
당시 김해 원정대 대장이었던 김재수는 그때까지만 해도 고미영 대장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스포츠클라이밍 잘하는 여자' 정도 였다고 합니다.
'첫 인상이 무척 깐깐해 보여 함께 등반하려면 무척 애 먹겠구나' 라고 생각햇던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 대장과 함께 정상까지 등반하는동안 생각이 바뀌었고
고산을 막 시작한 그녀에게 수많은 고산 등반 경험과 냉정한 판단력을 갖고있는 김재수 대장은 그야말로 꼭
필요한 존재이며 버팀목이었다고 합니다.
김재수 대장에게 앞으로 등반을 함께 해 달라는
고미영님의 부탁에 '하고 있는 사업 때문에 오랜기간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고산 등반을 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많다'고 고사했지만
거듭되는 부탁과 회유에 결국 '브로드피크만 함께 등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후에도 파트너이자 매니저로서 히말라야 8,000m 14개 거봉과 7대륙 최고봉 완등 레이스를
그녀와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미영 대장 사고경위와 매니저 김
2009년 7월 11일 히말라야의 고봉 낭가파르바트 등정에 성공한 고미영 대장은 하산 도중 실족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해 추락사 하였습니다.향년 42세
사고 다음날인 12일 오전 헬기를 동원해 시신을 구조할
계획이었지만 눈보라가 몰아쳐 구조 작업에 난항을 겪게 되고 함께 낭가파르밧을 함께 올랐던
김재수 대장과 7명의 구조대원이 직접 시신 구조작업에 나섰고 사고발생 5일후인 7월 16일
가까스로 고미영 대장의 시신을 발견하고 되는데
고 대장의 시신은 발견당시 조그만 바위에 등이 걸려 있어 유실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시신은 눈 속에 반쯤 묻혀 있었고 얼음을 깨는 2시간여의 작업 끝에 시신을 운반 할 수 있었는데요,
7월 19일 오후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분향소는 고 대장의 시신이 도착하며 깊은 슬픔과 애도 분위기로 휩싸였다고 합니다.
고인의 영정을 안고 분향소에 도착한 김재수 대장은
조문하던 과정에서 엎드린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는데요,
사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대장의 사고경위에 대해 설명한 바로 김재수 원정대장
카메라에 잡힌 그의 오열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을
마음 아프게 했는데요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 대장의 사고 경위에 대해
'고 미영 대장이 사고를 당한 지점은 캠프 2를 30m앞두고 전 구간이 로프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사고 구간은 로프가 눈 속에 파 묻혀 있었다' 며 '
하지만 위험한 구간이 아니라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다. 실수로 미끄러졌다기 보다 아이젠이 옷에 걸렸거나 아이젠 끈이 걸려서 갑작스레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습니다
또한 ' 낮은 지역으로 내려올 수록 산행에 지쳐있던 사람도 산소가 많아져 기력을 회복한다'며 사고당시 고미영 대장이 지쳐있거나 약한체력은 아니었다고 설명하며
무리한 등반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냐는 일각의 추측에 대해 반박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김재수 대장은 고미영 대장의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상황에 등반을 해서 시신을 회수하게 됐는데
수백 개의 낙석과 낙빙들이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 5명의 대원이 전혀 다치지 않았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는데
아마도 더이상의 인명피해는 시키지 않겠다는 고 미영대장의 의지가 하늘에 닿은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 김재수 대장은
'사적인 감정을 떠나 고미영씨는 나에게 초록빛 꿈을 주었던 여성이었다.
14좌를 오르면 우리에게 고산등반학교를 만들려는 계획이 있었다'며 계획하고 있던 청사진이 갑자기 사라지니 '암흑에 빠진 기분'이라며 영원한 등반동지를 잃은 참담한 심정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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