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보니 그럴싸,4화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배우
박병은이 게스트로 출연해
사건을 파헤치는 취재기자와
변호사 1인 2역을 연기합니다.
사건은 지난 1994년
부산에서 생긴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을 유괴 후
살인한 사건인데요,
이 안타까운 사건에
용의자는 다름 아닌 피해자의
이종사촌 언니와 지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세간에 충격을 던져줬던
이 사건의 진실과 결말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개요
1994년 10월 10일 12시 30분경
범인은 하교 후 귀가하던 강모 양(당시 8세)을
유인 대기 중이던 승용차에 태운 다음
노끈으로 손발을 결박하고,
입을 테이프로 막았습니다.
그리고 공중전화로 부모에게 협박전화를
걸어 몸값 200만 원을 요구했으나,
이후 피해자는 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괴된 지 이틀 만에야
언니 이 씨의 집 안방 책상 밑에서
보자기로 싸인 채 발견되었는데요
경찰에 검거된 이종사촌 언니는
이 범행에 남자친구인 원 씨와,
친구 옥시, 그리고 남모 양이 함께 가담했다고
자백했고, 경찰은 이 같은 이 양의 자백만을
토대로 공범 3명 모두를 차례로 검거하고
이 4명의 신세대들이 지존파를 모방하고
용돈 마련을 위해 저지른 유괴 살해사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에 연행된 공범 3명과 가족들은
무죄를 주장했는데요,
원피고인 등은 경찰의 가혹수사 시비를 시작으로
범인이 아님을 입증하는 각종 증거를 제시해
검찰과 치열한 알리바이 공방을 벌였습니다.
심지어 부장판사가 직접 참석해
현장검증을 다시 하기도 했는데
이때 이종사촌 이양은 강양을 살해한 현장을
지목하지 못하고 계속 얼버무리자,
'이 장소가 살해장소인지 아닌지 그것도 모른다는
얘기죠?'라고 물었는데,
'네 현재는요'라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공범이라고 지목된 3명은 꾸준히
경찰들이 가혹수사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범행당시 부산이 아닌
대구에서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진들과
운동회 비디오테이프들을 제시하며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쳤습니다.
살해장소에 대해서도 검찰은
부산은행 구평동 지점 옆 차량 안이라고 주장한 반면,
피고인들의 변호사들은
차량통행이 많은 번화가로 살해가 불가능하다고
변론하며 맞섰고
검찰은 또 다른 증거로
차 안에서 발견한 머리카락
감식 결과를 결정적 증거로 제출해
피해자 강 양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5개를
증거로 제출하지만
재판부는 모근이 없는
머리키락을 감식하는 리토콘드리아 방법의
한계를 인정해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유죄냐 무죄냐를 가리는 증거 제시 등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지만 검찰은
변호인 측의 증거를 결정적으로 뒤집지는 못하고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이들 공범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피해자의 이종사촌인 이 모양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현재까지도 복역 중에 있습니다.
이 사건 재판은 갖가지 진기록도 남겼는데요
13차 공판도중 총 98명의 증인이 소환되었으며
수사 및 공판기록도 4천여 쪽이 넘었습니다.
미국의 ㅡOJ심슨 재판처럼 이례적으로
TV카메라와 사진기자들에게 선고 공판정을 공개해
40여 명이 카메라를 들고 취재경쟁을 벌였고
선고공판이 열린 부산지방법원 법정에는 5백여 명의
방청객과 취재진이 몰려 좌석 240개를 꽉 채우고도
법정 주변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웠다고 합니다.
2. 사건의 의혹
이 사건의 주범이자 피해자의 사촌언니 이 씨는
실화극장 죄와 벌 제작진과 가진 면회 인터뷰에서
'내가 입을 열면 사람들이 다친다'라고 말했는데
사건의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모 씨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는 추측이 많았습니다.
이 모 씨가 종범이고 실제 주범이 따로 있지만
이 모 씨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입을 다물고 다른 사람들을
범인으로 몰고 갔다는 풍문도 있다고 하네요
30여년전에 발생된 사건이지만
남겨진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일텐데
부디 사건의 전말들이 명명백백 밝혀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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