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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기록

꼬꼬무, 제주4.3 사건 기억하고 기록하기(백골시신과 시멘트)

by 와우짱 2023.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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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막 시작되는
매년 4월이 되면
대한민국은 흐드러지게 핀
꽃을 구경하려는 인파들로 들썩 거립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슬픔과
그리움이 공존하는 시간으로,
돌아가는데요
 
60여 년 전,
이유도 모른 채 쓰러진 사람들과
이유도 모른채 가족들과 헤어진
사람들의 눈물과 원망의 목소리로
아득해지죠.

꼬꼬무 73화에서는
무지비한 탄압으로 얼룩졌던
제주도의 그날을 이야기합니다.
 
꼬꼬무 73화 게스트
김의성, 장혁진,강미나
 
1. 제주 4.3 사건 

1947년 3.1절 시위 모습을 그린 그림

4.3 사건의 시작은 3.1절 발포사건으로 부터였습니다.
해방 이후 제주도는 극심한 경제난과 혼돈의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시절 육지로 나갔던
도민들이 대거 귀향하며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는
기쁨과 안도는 아주 잠시.
 
제주는 실업난과 식량부족, 전염병 창궐로
도민들의 삶은 피폐하고, 어려워 졌습니다
그 와중에 친일경찰 출신들이 다시 경찰로
복권이 되었고
이들은 미 군정 관리들의 무능을 틈타 도민들을 상대로
악행과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여느 평범한 하루가 되었을 수도 있었던 
그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1947년 제주 북초등학교에서 있었던
3.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이 타고 있던 말 발굽에
어린아이가 다치게 되었던 건데요,
 
군중들은 아이를 다치게 해 놓고도 
미비한 대처를 한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고
경찰서까지 쫓아가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대응은 상식밖이었는데
항의를 하러 온 시민들에게 총을 발포해 
그 자리에서 6명이 사망하였고,
6명이 총상을 입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날 희생자 중에는 어린 학생과 젖먹이를
안고 있었던 20대 초반의 젊은 엄마도
포함되었죠

피살 - 강요배 화백

*이날 사망한 6명의 사망자 신원*
송덕윤 : 남, 49세 직업 농부
김태진 : 남, 38세 직업 농부
양무봉 : 남, 49세 직업 농부
오문수 : 남, 34세 직업 농부
허두용 : 남, 15세 직업 학생
박재옥 : 여, 21세 주부 (위 그림의 모티브가 된 희생자)
 
제주도민은 경찰의 발포에 항의했지만
경찰과 미 군정은 '정당방위'로 주장하며
오히려 도민과 학생들을 강제 연행하며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고

이 일을 시발점으로 제주에서는 3월 10일부터
제주 도청을 비롯해 행정기관 대부분인 23개 기관
105개의 학교, 우체국, 전기회사 등 제주 직장인
95%에 달하는 4만여 명이 총파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도민들은 '고문폐지' '발포 책임자 처벌''경찰 수뇌부 사퇴' '희생자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보상'등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미 군정과 경찰은 시위 주도자를 검거한다며
 3월 15일부터 파업 관련자를
연행하면서 4월 10일까지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무려 500여명 이상을 체포했는데
 
당시 얼마나 많은 제주도민이 경찰서에 구금이 되었는지 모든 유치장은 사람들로 가득차서 앉아있기조차
힘들었을 정도 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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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건의 희생자들과 억압했던 군인들

미 군정은 총파업을 막기 위해 육지에서 경찰과 서청 
우익청년단원을 대거 파견하게 되는데
특히 육지 경찰을 대신해 들어온 서청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제주도민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서청이란 서북청년단의 줄임말로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단체가 대공투쟁의 능률적인 수행을 위해 조직한 우익청년운동단체로 좌익공격에 적극 가담한 단체*
 
서청이 처음 제주에 들어온 것은 '유해진' 지사가
제주로 부임하면서 호위병으로 서청단원울 활용했던 것을 시작으로,
4.3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5백~7백명 가량의 서청 단원들이 제주로 들어왔습니다.
 
서청단원들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자, 태극기나 이승만 사진등을 강매하면서 테러와 폭행을 일삼아 이들을 제주 4.3사건 발생 원인의 하나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서청 경찰 중 악명을 떨치던 삼양지서 주임 정용철이
있었는데, 정용철의 입버릇은 
'하루에 한 명이상 죽이지 않으면 밥맛이 나지 않는다' 
였다고 합니다.

4.3진상규명을 위해 발간된 '서북청년단 만행'관련자료 ⓒ4.3도민연대

"서북 청년회 출신 정 주임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추행을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 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김제진 제주경찰학교 10기생 증언)

제주도 토벌에 나섰던 경찰과 서청단원, 군인을 격려하는 이승만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

 
극우주의자이었던 유해진 도지사는
'좌익계의 파괴 공작을 철저히 분쇄하고 청년단 등
반공 단체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총파업에 가담하거나 동조했던 제주 출신 관리자들을
사상이 불온하다며 파면시키고, 그 자리를 자신이 육지에서 데려온 사람들로 채웠습니다.
또한 제주도 경찰은  믿지 못하겠다며 육지 경찰과 서청의 감시와 관리 감독을 받게 허락했는데요,
 
육지경찰과 서청은 취조를 하면서 파업 주동자와 배후를 대라면서 심한 고문을 일삼았고
이 고문으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거나 목숨을 잃게 된 일이
빈번해지기 시작하자,
직장을 이탈하거나 피신하는 도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공포감과 
위기감을 느낀 도민들은 더 열정적으로
4.3 사건에 동조하게 되는데, 

남편이 보는 앞에서 아내가 강간을 당하고
자녀들이 몽둥이로 맞아 퇴학을 당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식량은 뺏기는 상황에서
제주도 원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산으로 도망을 가거나 죽창을 들어
반항하다 총에 맞아 힘없이 쓰러지는 일뿐이었습니다.
 
공식 희생자 14.532명
비공식 2만 5000명에서 3만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한집 건너 한집에서 매일
장례를 치루었다고 합니다
 
1954년 공식적으로 제주 4.3 사건은 종료되었지만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가는
제주도민들의 상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화 <지슬>의 한장면

국가보안법으로 수많은 제주도민이 검거되었고
검거를 피해 일본으로 피신한 도민들은
죽을 때까지 고향땅을 밟지 못하였으며
풀려난 사람들도 고문 후유증과 사찰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오랜 시간 제주에서 4.3 사건은 금기어였습니다. 특히 경찰이 제주도민을 향해  총을 발포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간첩으로 몰렸고,

수십 년 동안  죽은 가족을 위해 몰래 제사를 지내며  연좌제 때문에 공무원이나 사관학교, 공기업에 취업할 때마다 신원조회에 걸려 불이익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빨갱이 프레임에 씌워진 채
손가락질받던 제주도민들이 이제서야 신원이 
회복되고, 희생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4.3사건 유골 발굴작업

현재까지도 4.3 사건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작업이 계속 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희생자 수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이 흘러 이제 그들의 신원을 파악해 줄
가족들도 떠나고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꼬꼬무 73회
꼬꼬무 73회

제주의 슬픈 과거와 아픈 역사가 정말 치유될 순
없겠지만
그날의 이야기가 왜곡되지 않고, 
색깔론에 덮이지 않은채,
사실 그대로 전해질 수  있길 바라며,

역사의 판단은 읽는 자와 기억하는 자의
몫으로 남겨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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